알레산더는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통일한 위대한 정복자로 왕 중의 왕 대왕으로 불립니다. 이 번 글에서는 수많은 전투와 정치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알렉산더 대왕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떠했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알렉산더의 생애
알렉산더(Alexander III Magnus, 기원전 356~323)는 고대 그리스 북부에 위치한 마케도니아 왕국의 제26대 왕이었습니다.
본래 '알렉산드로스'이지만 영어식 발음인 알렉산더로 더 많이 알려졌고 그의 모험적인 생애와 일화는 수많은 소설과 영화의 소재로 인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왕족이었던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의 귀족 교육을 통해 읽기, 악기, 말타기, 사냥, 싸움 등을 교육받았는데 특히 16세가 될 때까지 그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다양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는 문무를 겸비한, 강한 의지와 군사적 재능을 지닌 천재적인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부왕이었던 필리포스 2세가 암살로 살해당하자 20세의 젊은 나이로 왕위를 계승한 알렉산더는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을 정복해 나갔고 30세가 되었을 때 그리스를 시작으로 남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인도 북서부에까지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그는 어떤 전투에서도 패배하지 않았고 전례 없는 드넓은 영토를 정복하고 통일한 가장 성공적인 군사 지도자였습니다.
그의 역사적인 정복은 수천의 전투용 코끼리 부대가 포함된 대군의 적과 일부 내부 반란으로 실패한 인도 정벌에서 실패하고 부상도 입으면서 결국 멈추게 되었고 바빌론에서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절친이자 참모였던 헤파이스티온의 죽음 이후 과도한 음주, 반대파의 독살설, 급성 질환 등 지금도 그의 사인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인간적인 면모
알렉산더의 성격은 전장의 리더답게 매우 급하면서 충동적이고 사나웠으며 야망이 컸던 어머니의 '제국을 정복하는 것이 너의 운명'이라는 교육에 의해 자연스럽게 정복자의 마인드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그 역시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왕권 강화를 위해 잠재적인 위험인물들에 대한 잔인한 숙청을 실행하였습니다.
사촌 형이었던 아민타스 4세를 가장 먼저 제거하였고 그다음 다른 두 명의 마케도니아 왕자를 처형하였으며 나머지 대상자들은 상황에 따라 일부 살려주기도 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잡고 유지하려면 이어지는 피의 숙청은 피할 수 없는, 정해진 수순 같아 보입니다.
알레산더의 외모는 다부지고 용맹한 모습이었지만 키가 작았고 동상이나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훈남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특유의 리더십과 함께 매우 영리하였는데 이와 관련된 알렉산더가 열 살 때의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한 상인이 필리포스 2세 부왕에게 고가의 말 한 마리를 바쳤지만 말은 왕을 포함한 그 누구도 태우지 않으려고 고개를 휘젓고 다리를 치켜세우며 난동을 부려 화가 난 필리포스는 말을 당장 치워버리라고 말했습니다.
분위기가 썰렁해진 그때 알렉산더는 그 말이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본인이 그 말을 길들이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다양한 교육을 받은 왕자이긴 했지만 열 살짜리 사내아이가 말하는 위험한 요구에 모두 당황하였고 고민하던 부왕은 허락을 하였습니다.
결국 알렉산더는 말을 잘 진정시킨 후 올라타는 데에 성공하고 멋있게 질주까지 하면서 필리포스 국왕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역시 용기 있는 왕자라고 모든 이들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아리스토렐리스의 영향
알렉산더는 철학과 예술, 과학에 대한 관심이 컸고 매우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는 전쟁터까지 항상 철학자들과 학자들, 예술가들을 동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심지어 인도 원정에서 자신의 영토 정복에 대해 극렬히 반대했던 인도 철학자들을 사로잡았지만 철학적인 대화 후 죽이지 않고 모두 살려 돌려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누구보다 빠르게 지식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이성적이고 지적인 측면은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으로서는 물론이고 한 나라를 이끄는 왕으로서 성공하는 데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카리스마가 넘쳤던 알렉산더는 절제와 청렴을 매우 중시했기 때문에 모든 인간들이 가지는 욕구들을 잘 관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절친이자 참모였던 헤파이스티온의 죽음 이후에는 자제력을 잃고 과도한 음주를 절제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알레산더의 모습들은 분명히 당대의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의 효과도 상당히 있었을 것입니다.
단순한 정복과 식민 지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를 융합하고자 했던 헬레니즘 문화도 이러한 바탕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알렉산더의 세계 정복에 대한 야망과 그것을 뒤받침했던 천재성과 전투력, 비상한 전략들은 이미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물리적 정복을 넘어 동맹 협정과 문화 융합을 함께 추진한 점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전 세계로 진출하고 있는 패권주의 국가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교훈이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전쟁터에서 조차 학자들을 존중하고 옳다고 생각 바를 실천했던 그의 리더십은 카리스마와 파워만을 강조하는 현재의 다른 리더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의견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원전에 짧게 살았던 알렉산더가 아직까지도 대왕으로 칭송받는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